이탈리아를 두고 흔히 만자레(mangiare, 먹다), 칸타레(cantare, 노래하다), 아마레(amare, 사랑하다)의 나라라고 한다.
먹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의 경험
내 친구 중에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 지방 출신의 신부님 한 분이 있다.
오래전 그가 사제서품을 받았을 때, 서품식과 첫 미사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 사제서품을 받고, 다음날 교중미사를 첫 미사로 봉헌하는 일정이었다. 그때 우리 딸은 어렸고, 남편과 나는 신부님 어머니의 초대에 못이기는 척하며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토요일 저녁에 도착했을 때, 신부님의 어머니는 성대한 만찬으로 우리의 정신을 쏙 빼 놓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전날 저녁에 먹은 게 아직도 소화가 안 된 상태인데, 아침을 거르면 안 된다며 또 성대하게 조식을 준비해 놓으셨다. 거절할 수가 없어 아침도 배터지게 먹고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와 축복식을 마치고 나니, 시간은 거의 오후 2시가 되었다. 점심으로 치면 늦었지만, 아침을 성대하게 먹은 덕에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그리고 2시 30분쯤부터 시작된 점심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끊임없이 나오는 요리와 그것을 매번 열심히 받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많이도 먹는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접시가 몇 번이나 나왔는지 셀 수가 없었고, 두 번째, 세 번째 접시도 그랬다. 긴 시간을 두고 먹으면서 수다도 떨고 노래도 부르고, 일부는 한쪽에서 춤도 추기도 했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가 되었고, 점심 식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린 딸은 내 무릎 위에서 잠이 들었고, 나도 점차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무도 일어나려는 사람이 없었고, 음식도 계속해서 나왔다.
우리는 결국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로마까지 달려 한밤중에야 집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인에게 먹는다는 것은
이탈리아인에게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단지 생존을 위한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문화 생활이자, 가족 간 혹은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역사와 전통을 잇는 행위이자, 인간관계의 매개 역할을 하는 특별한 순간으로 간주된다. 그걸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별 대표 요리와 관련해서는 앞서 올린 포스팅을 참고하면 된다.
https://serenakhk.tistory.com/entry/이탈리아-지역별-음식
이탈리아의 지역별 추천 음식
# 전식 Antipasto Italiana이탈리아 식탁에서 전식, 곧 에피타이저는 본 식사가 나오기 전에 입맛을 돋우어주는 음식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기도 해서, 가족, 친구들의 모임에선 절대 빠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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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한다
이탈리아인에게 식사는 그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직도 이탈리아의 많은 가정이 직장생활로 점심은 부득이 나가서 해결해야 하지만 적어도 하루 두 끼, 아침과 저녁은 온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서 하려고 한다. 특히 일요일 점심은 조부모가 생존해 있는 경우, 대가족이 모여 하는 걸 당연히 생각한다.
2.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행위다
이탈리아의 음식 문화는 지역마다 특징이 있고, 그만큼 고유한 전통 음식이 많다. 가령, 북부 이탈리아는 쌀과 옥수수를 주재료로 한 리소토와 폴렌타 같은 요리가 많다면, 남부 이탈리아는 파스타와 피자가 중심인 요리가 많다. 음식은 각기 다른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3. 개인의 사회활동의 한 부분이다
이탈리아인은 식사를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타자와의 만남과 소통을 의미하는 특별한 순간으로 인식한다. 친구, 동료 혹은 이웃과 함께 식사하면서 관계를 강화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걸 삶의 낙으로 생각한다.
4. “나쁜 걸 먹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유명한 셰프이자 음식 작가인 고든 램지가 한 이 말은 음식의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은 음식을 즐기려는 이탈리아인의 삶에 가장 어울리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탈리아 음식에서 신선한 재료와 우수한 식자재는 너무도 중요하다. 전통적인 재료 사용법과 요리법은 이탈리아 요리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탈리아에도 도둑과 사기꾼이 많지만, 먹는 것에는 진실하다는 말이 있다.
5. 음식에서 드러나는 예술적 요소도 중요하다
이탈리아인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먹는 것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요소가 다분하다. 눈, 코, 입, 손으로 색, 향기, 맛, 질감 등을 고루 맛보고, 그것을 자신감 있게 내놓는 프레젠테이션에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서, 감각을 자극하고 기쁨을 주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인에게 음식은 단지 ‘먹는 것’을 넘어서, 삶의 질을 높이고, 타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지속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