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타레(Cantare)의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 사람들은 노래하는 걸 참 좋아한다.
기악을 좋아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북부 유럽과 달리 적극적인 표현인 노래는 어쩌면 이탈리아인들의 성격을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칸타레(Cantare)는 “노래하다”라는 동사다.
가끔 이탈리아인의 말하는 걸 듣다 보면, 말을 하는지 노래를 하는지 혼동할 때가 있다. 다음 글에서 말하겠지만, 언어 자체의 리듬과 발음, 그리고 선율적인 특성이 그들을 노래하는 민족으로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 내가 본 이탈리아인의 칸타레 낭만

1980년대 중반, 유학 생활 초기에 나는 리디아라는 할머니와 1년 6개월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할머니의 나이는 78세였고,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분은 시골에 농장도 있어서, 정기적으로 가곤했고, 거기서 나오는 각종 채소와 과일로 우리 집은 늘 풍성했다. 그때 나는 치커리라는 채소를 처음 알았고, 채리를 광주리 들고 나무 위에 올라가서 따 먹곤 했다. 할머니 집에서 나온 뒤, 나는 오랫동안 채리를 돈 주고 사 먹지 못했다. 양떼도 많아서 털 깎는 걸 보는 것도 내게는 큰 구경거리였다.
어느 주말, 할머니는 친한 친구들을 농장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출장 뷔페처럼 전문요리사를 모셔다 식사 준비를 성대하게 했고, 식사 후에 노인들의 노는 모습에 나는 넋을 잃고 구경했다. 리디아 할머니와 다른 한 분만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짝이 없고, 나머지는 모두 부부 동반으로 왔다.
 
식사가 끝나자 음악을 틀어놓고 모두 일어나 춤을 추는데, 내겐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걸 현실에서, 그것도 노인들이 짝을 맞추어 자연스럽게 추는 춤이 생소하면서도 매우 좋아 보였다. 한국에서 보던 우리네 어르신들은 할아버지가 앞서 걷고 모든 짐을 다 들고 빨리 못 따라온다고 야단맞으며 뒤따라가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는데, 그 사뭇 다름에 신선한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이탈리아인에게 음악과 춤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영화나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삶의 한 부분으로 다 함께 즐기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건 또 한참 후에 느꼈던 마카레나 춤의 유행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음악적 전통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1.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의 발상지, 이탈리아

교회음악을 대표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이탈리아 음악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레고리오 대교황(Pope Gregory I, 540~604년)이 그때까지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불러오던 여러 지역의 음악을 통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집대성했다고 해서 붙은 음악 장르다. 역사가 깊은 만큼 교회음악의 핵심은 물론, 서양 음악의 기초이자 중세 그리스도교 음악을 대표하는 장르로 인식되어 베네딕토 수도회를 중심으로 한, 수도회와 교회에서 그 전통을 이어왔다. 그러니까 이탈리아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발상지인 셈이다.

지상에서 부르는 천상의 음악으로 알려진 그레고리오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징은 단선율(Monophonic)이라는 데 있다. 반주 없이, 라틴어 가사를 사람의 목소리로만 부르며 – 이것도 신학적인 의미를 지님 -, 단일한 리듬을 따른다. 원래 기도와 찬송의 하나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를 때도 화음이 아니라, 하나의 음을 반복하는 형태로 부른다. 리듬은 매우 자유로워서 고정된 박자나 템포 없이 성경 텍스트의 의미를 강조하는 선에서, 길이에 맞게 자유롭게 리듬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며 부른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근대 시기에 들어오면서 서양 음악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리듬, 음계, 화음, 악보의 발전을 이끌었고, 대위법(Counterpoint)과 조성음악(tonal music)의 토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오페라의 발상지,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오페라는 음악, 연기, 무대 연출, 무용 등 다양한 예술 형태가 어우러진 복합 예술로, 역시 감성적이고 극적인 이탈리아인의 성격과 잘 맞는다.
오페라의 기원은 16세기 말, 피렌체 메디치궁전에서 시작되었다. 연회와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곡을 붙여 단막극으로 부르던 실내악(camerata)에서 유래한다. 원래 카메라타는 1570∼80년대 피렌체의 바르디 가(Bardi 家)에 모여, 고대 그리스 연극을 모델로 실내음악을 만들어 부른 예술가 단체였다. 음악과 연극에 인간의 감정을 담아 표현하려는 시도가 오페라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이 비극적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피렌체에서는 거기에 음악적 요소를 담아 재구성했다고 하겠다.

가비아니 작, "카메라타 디 바르디의 음악인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내 악기 박물관 소장

 
오페라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공식적인 작품은 1599년 피렌체 피티궁전에서 초연된 “다프네”다. 궁정악사였던 자코모 페리(Jacopo Peri)가 썼다.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이후에 나오는 오페라의 구조와 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7~18세기에 이르러 고전적인 이야기나 신화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인공의 영웅적이고 고귀한 성격을 다룬 오페라 세리아(seria, ‘진지한 오페라’)와 사회의 부조리나 특정 인물을 희극적으로 다룬 오페라 부파(buffa, ‘희극적 오페라’)라는 두 가지 오페라 장르가 나오면서 크게 부상했다. 19세기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 시기로, 베르디(Verdi), 로씨니(Rossini), 푸치니(Puccini) 등이 등장하며, 오페라의 형식을 발전시키고, 이탈리아 음악 특유의 감동과 극적인 감성을 세계에 알렸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오텔로”, “아이다”, 로씨시의 “세비야의 이발사”, “윌리엄 텔”, 푸치니의 “라 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 “토스카” 등은 모두 시기에 나온 작품들로,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가 뿌리를 내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3. 클래식 음악도 이탈리아

흔히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독일, 오스트리아 등 북부 유럽을 떠올리겠지만, 이것 역시 이탈리아의 고전음악인 합창과 아리아, 음악 이론, 작곡, 연주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17세기, 이탈리아가 바로크 음악의 중심지가 되면서 강렬한 감정 표현과 화려한 장식으로 클래식 음악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은 이런 스타일을 잘 활용했는데, 그 중심에 “사계(The Four Seasons)”를 작곡한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가 있었다. 바이올린 협주곡에 독특한 기법과 감성적인 표현을 가미하여 바로크 음악을 재정립했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이탈리아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전통을 잇는 한편, 이후 하이든과 모차르트, 바흐에게 음악적 전통을 물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음악 이론과 작곡에서 크게 발돋움한 시기는 18세기다.  한 세기 전, 메디치 궁전에서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제작한 피아노의 원조 클라비코드(하프시코드)가 있었고, 이미 확산된 이 악기를 위해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는 여러 작품을 남겼다. 이탈리아 악파(Italian School)에서 발전한 화성과 대위법도 지금까지 음악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내부

 
이탈리아가 클래식 음악의 본산지라는 증거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나폴리의 산 가를로 극장, 로마의 오페라 하우스,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현재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 클래식 음악의 중요한 공연장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매년 개최되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축제와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도 클래식 음악 전통을 잇는 중요한 행사들이다.
 

4. 전통음악과 댄스의 나라,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다양한 음악과 댄스가 풍부한 나라기도 하다. 지역마다 다른 전통 민속 음악과 춤은 이 민족의 성격을 잘 반영해 준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성격을 드러내는 데다 악기, 리듬, 양식도 모두 달라 여러 갈래의 전통음악과 동반하는 춤을 대변한다.
 
피에몬테, 에밀리아로마냐를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은 피아노, 바이올린, 아코디언, 트럼펫이 동원되고, 토스카나, 움브리아, 마르케주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은 말렛(mallet)을 이용한 타악기의 하모니가 특징이며, 캄파니아, 시칠리아, 칼라브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기타, 밴조(banjo), 아코디언, 콘트라베이스가 동원되어 매우 흥겹다.
지역별 춤도 남부 지역의 것은 “타란텔라(Tarantella)”라고 하여, 빠르고 경쾌한 리듬에 남녀가 짝을 맞추어 추는 걸로 유명하다. 과거 시칠리아와 캄파니아 지역에서 타란튤라라는 거미에 물려 온 몸에 퍼진 독을 빠르고 격렬한 춤으로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XjxAi5ruqY

아말피 해안에서 추는 타란텔라

 
남부 지역에는 타란텔라 외에도 발놀림이 복잡한 발로레(Ballore)라는 춤도 있다.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유래한 피에라(Piera)라는 춤은 아코디언 음악에 맞추어 여성들끼리 가볍게 추는 춤이다. 피에몬테 지역에서는 파르티타(Partita)라는 춤도 있다.
 
지역별 이런 춤과 음악은 사회적 기능이 큰데, 지역 사회의 연대감과 집단의 정체성, 공동체의 의식을 고양하고, 사교에서 활력을 주는 문화 활동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렇듯이, 이탈리아에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중심으로 한 클래식 음악에서부터 오페라, 칸초네 등 다양한 지역별 전통음악이 있다. 음악사에도 이름을 남긴 피아노의 원조가 피렌체 메디치궁전에서 나왔고, 카시니, 스트라디바리, 크리스토포리 등 악기 명장들도 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다.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내, 악기 박물관에 소장된 피아노의 원조 클라비코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런 음악적인 전통은 연중 끊이지 않는 각종 오페라 공연과 오페라 축제, 대중음악의 중요한 행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레모 음악제(Sanremo Music Festival) 등으로 인해, 여전히 세계의 많은 나라와 음악에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