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024 작성
내가 사는 곳은 피렌체,
조베르티가(街) 3번지에 있는 “천사의 알현을 받은 성 요셉(S. Giuseppe dell’Apparizione)” 수녀원이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온 것은 코비드-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0년 겨울이었다. 도심에서 약 1.5km 떨어진 이곳은 걸어 다니기도 좋고, 교통도 좋고, 무엇보다도 우리 집이 있는 조베르티가가 “100개의 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쇼핑가라 가로등이 밤늦게까지 환한, 피렌체에선 보기 드문 번화가다. 개인적으로 도심에서 혼자 원룸을 임대해서 있을 때보다 훨씬 좋다. 아래층 수녀원에는 작은 경당도 있어서, 구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로선 정말 부족함이 전혀 없는 곳이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인터뷰부터 lockdown 기간에 이사하는 모든 편의를 제공해 준 분은 수녀원의 원장 페트로닐라 수녀님이다. 남미 과테말라 출신으로 수도 생활 총 42년 동안 이탈리아에서만 31년을 살았다고 했다. 이제 일흔이 다 되어 남미 총책임자로 오늘 새벽 과테말라로 떠났다. 이탈리아에서 내가 본 외국인 중 이탈리아어를 가장 잘했고, 통솔력도 대단해서 수녀님들은 물론 나처럼 이 집에서 기숙하는 이탈리아 남부 출신의 개념 없는 초딩교사들까지 논리와 개념으로 확실하게 잡았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분이 성무일도를 하면 “기도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목소리가 아름다워 노래로 하는 기도를 맛깔스럽게 했고, 아름다웠다. 수도원 내에서, 지금까지 이 수녀님이 양성시킨 수녀님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하나같이 수도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수녀님의 이름은 그분의 카리스마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과테말라의 신앙심 깊은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똑똑해서 ‘수녀가 되어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엄마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수도 생활이 훨씬 쉬울 것 같아서 수도자의 길을 택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
한 번은 페트로닐라에게도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온종일 일주일 치 기도를 한꺼번에 다 했으니까, 앞으로 일주일은 기도할 때 절 부르지 말아 주세요”
이 말이 떨어지자, 식탁은 잠시 조용해졌고,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남은 음식을 모두 가져와 페트로닐라에게 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걸 내가 어떻게 다 먹어요? 벌써 밥도 다 먹었는데?”
그러자 엄마는 조용히 딸의 눈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단다.
“일주일 치 밥을 한꺼번에 다 못 먹듯이, 기도도 마찬가지란다. 매일 그날의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기도도 매일 일상 속에서 배가 고프지도, 터지지도 않을 만큼씩 꾸준히 하는 거란다.”
수녀님이 받은 가정교육은 실제로 모든 것에서 발휘했다.
당신과 하느님 간 관계인 신앙은 바쁜 업무로 그 관계가 행여 소원해질까 봐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걸로 모범을 보였고, 이웃을 대하는 방식은 매일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과 행인들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났다.
함께 했던 지난 4년간, 난 참으로 따뜻했다. 아무리 시절이 사나워도 집에 들어오면 엄마처럼, 언니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이 있어서 평안했다.
고향에서의 임무에도 축복이 있기를,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작은 빛이 되시기를 빈다.